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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6 경기옛길 의주길 제1길

걷기

by insun20140724 2022. 4. 2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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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옛길 : 의주길 제1길 벽제관길

 주요 코스 : 삼송역 ~ 의주길 벽화거리 ~ 덕명교비 ~ 송강 공릉천 ~ 제1대자교 ~ 벽제천 ~ 벽제관지

 코스 정보 : https://ggcr.kr/?pg=10002&pgView=uiju&lNumber=3

 

 실제 총거리 : 6.97km (갤럭시 워치4 기록-시작 약 1km이후부터 측정-오류)

 소요 시간 : 1시간 31분 (11:32 ~ 13:07)

 트랭글 어플 따라가기 함. 

 

▶ 교통편

 - 갈때 : 전철 이용 시간 1시간 26분 (안양역 승차 09시35분 ~ 3호선 삼송역 하차 11시01분)

 - 올때 : 제2길 바로 시작.

  약 180m 거리의 고양동시장 버스정류장 서울 간선 774 이용. 

 

경기옛길 의주길 제1길 소개글

  의주길의 제1길 벽제관길은 서울 지하철 3호선 삼송역에서 출발해 김지남묘, 덕명교비, 벽제교, 대자삼거리, 고양1교를 거쳐 벽제관지까지 가는 길로 총 거리 7.6km의 길이다. 벽제관길은 서울에서 의주와 중국을 향하는 의주길의 시작으로 조선에서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 일행을 배웅하고, 중국에서 온 사신들이 영접받는 길이었다. 벽제관길은 전체적으로 완만하며 걷기 좋은 길이지만 약간의 오르막이 있는 길이다. 벽제관길에서는 덕명교비와 벽제관지에서 스탬프를 받을 수 있다.
  삼송역에서 조금 걸어올라가면 삼송동과 오금동, 신원동의 경계에 위치한 숫돌고개가 있다. 숫돌고개는 의주길의 시작에 위치한 만큼 한양 이북의 교통의 요충지였다. 따라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에 임진왜란 당시 큰 전투인 벽제관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지원군 총사령관 이여송이 1593년 1월 27일 숫돌고개에서 일본군의 매복에 대패한 ‘벽제관 전투’의 복수를 다짐하며 이곳 고개의 바위에 자신의 칼을 갈았기에 숫돌고개라는 지명이 전해져온다.
  벽제관길의 중심인 사적 제144호 벽제관지는 중국에서 온 사신들이 도성으로 들어오기 전 하루 쉬며 의관을 정비하던 역관인 벽제관이 있던 터다. 벽제관은 조선 성종 7년(1476년) 11월에 세운 곳이다. 벽제관은 의주길의 10여채에 달하던 역관 중 가장 중요성이 높은 곳으로 국왕이 제릉에 제사를 지내러 행차할 때 숙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벽제관의 건물은 한국전쟁으로 불타 없어지고 그 터인 벽제관지만 남아있다.
  인근 숲길에는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 51호 김지남묘 및 비갈이 있다. 김지남은 1712년(숙종 38년) 청나라와 국경선을 확정짓기 위해 양국 대표가 회동할 때 수행원으로 참여했으며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국경선을 확정하는데 공헌했다. 이후 아들 김경문과 함께 사대와 교린의 외교에 대한 연혁·역사·행사·제도 등을 체계화한 ‘통문관지’를 편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통문관지는 당시 외교에 종사하던 실무진의 필수서가 되었고, 이에 그치지 않고 일본과 중국에 건너가 조선과 외교하는데 지침서가 되었다.
  공릉천 부근에서는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52호 덕명교비를 볼 수 있다. 덕명교비는 한양과 북부지방을 연결하는 의주대로 구간 중 공릉천에 다리를 건설하고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기록한 비다. 덕명교비는 1658년(효종 9년) 당시 고양군수 윤후성, 윤민지, 이상식, 홍시우를 대표로 한 760여 명의 주민들이 건립했다. 덕명교비는 덕명교 건설에 공헌한 이들의 명단을 기록하기 위해 한문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백성들도 이두를 사용해 모두 기록한 비석이다. 이런 이유로 덕명교비는 조선시대 이두를 연구하는데 훌륭한 자료로 쓰여지고 있다.

 

 

의주길 제1길 안내도
트랭글 어플 기록
갤럭시 워치4 기록
코스 고도 - 갤럭시 워치4 기록
갤럭시 워치4 기록
의주길 안내도 (삼송역 8번출구)
덕명교비 스탬프함
덕명교비
이정표
이정표
안내문
500년 느티나무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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